사회복지 스토리텔러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Re:Work Season 20(191~200회)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리워크 - 20화 / 조수동(200)]

SocialWelfare StoryTeller 조형준 2023. 9. 6. 03:20
728x90

 드디어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가 200번째를 돌파했습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에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요.

기쁜 마음과 더불어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9월의 마지막 콘텐츠

   <서울시 공유복지플랫폼> Wish 152번째 현장 스케치,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사회복지사 조수동

 

[#  모두와 7142(친한사이)를 꿈꾸는 사회복지사 ]

 

안녕하세요. 사회복지사 조수동입니다..라며 인사하기를 좋아하는 반찬인 시금치 나물만큼 매우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1. (사)우리복지 이사장 겸

2. 장애인활동지원기관장(대전 유성구) 겸

3. 한국파트너복지회장 겸

4. 한국복지상담바리스타협회장 겸

5. '복지상담카페 7142'와 발달장애인카페 'I got everything' 대전둔산우체국점 운영 겸

6. 서정대학교 사회복지상담과 태릉교육장 책임교수 겸

7. <7142Cho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직접 기획과 편집, 제작 및 운영 겸

 

노년기에 혼자가 되신 분들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고자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전용 카페 개설 등 또 다른 일감을 찾고 있는 일 중독자랍니다.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

1977년도에 고교를 졸업하고는 손가락 지문이 닳고 갈라질 정도로 열심히 농사일을 했었습니다. 돼지우리 청소를 하던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치매를 얻어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큰아들인 저만 알아보시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님의 한 맺힌 소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4년제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와서 도둑질을 하든 농사를 짓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졸업한 지가 3년이 지난 것도 문제였지만 성적표를 보면 중간에서도 뒤쪽으로 밀리는 실력인데 내신성적을 반영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제게는 그냥 돼지농사가 훨씬 더 쉬운 노릇이었습니다.

 

장애인 결혼을 위한 사랑방 모임과 연극봉사단

당시에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관심갖는 소위 비인기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어렵게 진학한 <사회복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비싼 논을 팔아 당신께서 원하시던 대학 졸업장을 받았지만, 밥을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보이질 않아 서둘러 군입대를 하였죠.

 

복무를 마치고 잠시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입문하였지만 패션이 아닌 늘씬한 모델들에게 더 많은 눈길이 가는 듯 했습니다. 스스로 '아직 사회인으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기에는 나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리고는 도피 수단으로 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습니다. 이것이 한평생을 파란만장한 현장의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게 되는 숙명적인 첫걸음이 될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 해당부분은 본 프로젝트의 핵심이기 최대한 편집을 절제하고 원본에 충실함을 알려드립니다.

 

‘이웃 사랑’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 책임의 사회보장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복지의 기본 가치인 ‘이웃 사랑’이 없다면 결국 수박 겉핥기와 같다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지역에 아무리 많은 노인복지관이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동네 어르신을 존경하는 가치나 정신이 없다면 어르신의 행복보장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노(老)라는 의미를 ‘늙을 노’가 아닌 ‘존경할 노’가 되도록 총체적인 투자와 노력을 함이 노인복지의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습니다.

 

노인복지관 어르신 이성교제 특강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는 ‘I’ 중심의 ‘자기복지’가 아닌 ‘We’ 중심의 ‘우리복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ill-being'세상이 아닌 'well-being'세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잘 나가는 사자(字) 직업들 가운데서 사자(字)가 앞뒤로 달린 우리 사회복지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 오늘날 병든 세상을 살리는 선구자가 되길 개인적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어르신들의 장례를 정성껏 모셔야 하는 장남 역할인 양로원 총무를 시작으로

사회복지관의 실무자 및 부장을 거처 20년 이상을 관장을 맡다

이어 법인의 사무총장 및 이사장으로도 살아오면서

 

일선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솔선하려 노력하였습니다.

 

베트남 지적장애인 가정방문

1. 장애인 결혼문제 해결을 위한 30여년 간의 결실로 200쌍 이상의 장애인 부부 탄생

2. 지역조직화 사업으로 용마산 전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및 중국 조선족방과후교실 설립

3. 공동모금회 지원으로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인 <119시범사업 실시>

4. 포스코로부터 26억원을 지원받아 인천 도담도담장난감월드 9개를 개소, 구청에 시설기증

5. 베트남 어린이집 설립 및 페루 컴퓨터 교실 설치 등

 

국내외적으로 감히 실천 현장의 복지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여 보았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여성플러스' 결혼문제 출연

더불어 92년도 시간 강사를 시작으로 오랫동안의 겸임교수 기간을 포함한 사회복지상담과 조교수를 마지막으로 지금은 (위탁반) 책임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엉터리일망정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는 자칭 거짓말 강의(?)를 30년 이상 더불어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함을 느끼기에 “무인이 어찌 누워서 죽음을 맞겠느냐?” 는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며 꼿꼿이 사회복지사로 살다가 죽는 것이 스스로의 큰 다짐이요 소소한 포부로 삼고 있습니다.

 

중국 조선족 장애가정 결연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 살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저는 "라포(rapport) 형성’이란 기술을 배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또한 이를 위함이 아닐런지요? 큰 결실 이루시길 박수로 지원합니다.

 

끝으로 "호랑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실제 호랑이를 보셨는지요?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들 또한 아직 못 보았을 것으로 장담을 합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호랑이는 동물원 우리에 갇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장난감 호랑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나 여러분들은 지금 멀쩡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야생의 사회복지사가 아닌 주어진 월급에 안주하는 그런 장남감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