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스토리텔러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Re:Work Season 22(211~220회)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리워크 - 31화 / 이미혜(211)]

SocialWelfare StoryTeller 조형준 2023. 11. 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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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세번째 콘텐츠

   <서울시 공유복지플랫폼> Wish 163번째 현장 스케치,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  장애 당사자들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그녀]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장애 당사자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꿈을 다른이들이에게도 전하고자, 또다른 계기를 마련하는데 하나의 예가 있다는걸 알리고 싶어서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사회복지사로 장애인활동지원기관에서 일을했었어요. 결혼 후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고는 장애인체육회에서 장애인스포츠댄스 댄서로 4년정도 활동하며 지방대회 및 전국체전등에 출전하였죠. 현재는 부산에 위치한 <동래구 장애인복지관>에서 프로그램도 참여하며 평소 좋아하던 그림이랑 사진, 미디어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터뷰이가 실제 작업한 미술작품. 독학 중이라고!

 

이러한 활동이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건강함을 유지시킴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내면적인 스트레스 및 트라우마가 늘상 존재해요. 이를 미술이나 사진 등을 통하여 적절하게 표출하고 또 예술로도 승화시켜 자신의 문제들을 알아가며 치유하는 일을 하고싶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한 작업 및 체험을 시도하고 있어요. 장애를 특별함으로 표현하고자 노력 중에 있죠.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 해당부분은 본 프로젝트의 핵심이기 최대한 편집을 절제하고 원본에 충실함을 알려드립니다.

 

"누구나 불편함 없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고

- 어른들은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하며

- 자기가 선택하는 삶에 책임을 살아갈수있는 사회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 성 소수자 등이 차별없이 살아갈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사회가 사회복지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60~70년대에 비하여 경제적 성장은 많이 되었다고는 보나 아직도 시민의식을 비롯하여 사회적 기반은 많이 낙후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요?

 

제가 살고 있는 부산만을 보더라도요. 지하철역에 하나 밖에 없는 승차객이 많은 서면, 동래역의 하나 밖에 없는 엘레베이터를 10일 이상 유지보수를 진행한다며 휠체어 장애인의 이동권을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평소에도 부산의 중심 환승역의 경우, 환승통로를 휠체어 장애인 및 유모차 등은 밖으로 돌아가 횡단보도를 넘어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이를 당연시하며 이동 시 직원을 호출하라는 지시문 하나만 달랑 엘레베이터 옆에 붙여 놓을 뿐이죠. 행여 비라도 오면 환승을 위하여 돌아가야하는 어려움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답니다.

 

 

휠체어 장애인은 인도 내 보도블럭의 비탈진 미끄러움 그리고 돌출부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치기 일쑤입니다. 공간도 좁은 인도에 조경수들은 어찌나 많이 심어 놓았는지, 뿌리가 올라와 안그래도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죠. 지나가더라도 어떤 인도에는 내려올때 턱이 높아 내려오지 못한 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쌩생 지나가는 차 옆을 달려야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었고요.

 

밥은 문턱이 없는 곳에 무조건 메뉴와 상관없이 들어 가야합니다. 또 장애인 좌석하나 없는 가게에 휠체어 자리가 많이 차지한다고 돈을 내고 먹겠다는데도 일체 문앞에서 거절하는곳도 많습니다. 단체 모임이라도 하나 할라치면 장소를 찾을곳이 없는 나머지 부산 온 동네를 다 뒤져 겨우 한 두군데 고깃집을 찾은 게 다 입니다. 이마져 화장실 사용이 안 된다니 정말이지 갈곳이 없어요. 사회복지란 이런 일상이 누군가가 감수하며 살아감이 당연시 된 방조된 사회가 아니라, 하나하나 비장애인들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출처: JTBC(클릭하면 이동)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요? 장애인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이 교육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느낀 학창시절이 있어서 였습니다. 그땐 초등학교의 경우 인근에 특수학교도, 지체학교도 잘 없었던 때였거든요. 장애인의 입학을 거부하던 사례가 빈번한 시절이었습니다. 여러번의 입학거절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고 조용한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젊은 교장선생님의 편의로 겨우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제 등·하교를 담당하며 3정거장이 넘는곳을 직접 휠체어를 밀고 다니시기도, 경량의 전동 오토바이를 아버지에게 배워 면허 없이 운전하시기도 했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아픈 날이 아니면 결석없이 6년의 등·하교를 매일같이 했었죠. 하지만 장애인 편의시설 하나 없는 초등학교에서 절단 장애인인 저는 무릎에 가죽을 덧덴 바지가 유일한 고통의 절감수단이었습니다. 2층 또는 3층 계단을 무릎으로 기거나 엉덩이로 내려 오는등의 방법으로 이동하였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난뒤엔 축축해진 바지를 말리며 수업을 하곤 했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의는 우수한 성적표로 보답받곤 했습니다. 글짓기랑 미술 등에도 재능을 보이며 학교생활을 잘 적응했죠. 여기에는 급식시간이면 두개의 식판을 들고 5개 교실을 지나 매일같이 점심을 가져다 주는 친구의 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올라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만난 또다른 친구가 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고자 잔디밭에 둘러 앉아 있었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기 휠체어에 가방 좀 올려놔도 될까요?"라며 만남을 시작한 이 친구. 올해로 알고 지낸 지 23년이 되었네요.

 

대학내내 같이 수업 시간표를 짜고 또 함께 들으며 제 발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첫 만남은 짧은 우연이었지만,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며 인생을 나누었죠. 때로는 남들의 얌체같은 이기심에도 같이 싸워주며 내 편이 되어준 사람, 아직도 서로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배경에 "같이 욕을 잘해서"라며 농도 던집니다.

 

졸업 후에도 늘 부산으로 1년에 2~3번은 내려와 종종 자고 갑니다. 사회복지와의 연을 맺은 가운데에서 가장 큰 선물이 그 친구라 생각하고요.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이러한 얘기들을 하고싶어 인터뷰를 하겠다고 응한 것이었어요,

 

제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분들이 사회복지가 수요가 많아서 전망좋은 직종이라 선택하기보단, 그 안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궁금해는 따뜻한 지인이 되고자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회복지가 발전이 있을꺼라 생각하고요. 일을 하며 지치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위안을 얻고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는 멀리 있는것이 아니예요.

 

- 어두운 곳에서 작은 빛을 함께 찾아가는 것

-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것

- 기댈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것

 

그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이 사회복지라 보거든요. 커피 한잔의 돈을 매달 기부하는것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의 굶주림을 면해줄 수 있다고 비유하면 될까요? 거창하고 번지르르 한 것만이 사회복지라 생각하지 않는 마음부터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요. 그렇다고 제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지만은 또 않습니다. 바꾸어 갈 건 바꾸어 가고 새로이 만들어 갈 꿈들을 바탕으로 삶을 살죠. 그래서 장애는 단지 운명의 고달픔이 아닌, 이번 생에 주어진 나만의 특별한 환경이라 생각하며 점진적으로 바꾸어 갈 거예요.

 

제가 가진 색 그대로요. 화려하게 꾸미는걸 좋아해서 패션도 다양하게 신경쓰는 편이예요. 늘 외출이 기대됩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화장을 하고 악세서리를 맞출까?'하면서요. 하이힐을 신지는 못하더라도 그 밖의 패션은 다른 이들을 능가한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더욱 가꾸려 하는 편이예요. 외형이 다르면 어떠한가요. 모두가 다른 세상, 각자만의 개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겠어요?

 

요즘 하루가 즐겁고 신나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