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스토리텔러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Season 6~10(51~100회)

[사회복지 스토리텔러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 88. 최충일

SocialWelfare StoryTeller 조형준 2016. 4. 2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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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 장애인복지 수업 때 특강으로 왔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납니다.


장애인 아빠가 아닌 '지성이 아빠'로 기억되길 원한다는 그.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88
번째 주인공 '최충일(성민복지관 전산관리자)'씨입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 /Aka. C.Flow]


현재 기관홍보 및 인식개선, 전산 관리 역할을 맡고 있는 서른 넷 힙합 마니아입니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귀여운 아들과 함께 두런두런 살고 있는 지성이 아빠이기도 하고요.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 해당 부분은 본 프로젝트의 핵심이기에 최대한 편집을 절제하고 원본에 충실함을 알려드립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었던 여러 가지 관점들,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우선 떠올리게 되네요.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끊임없이 극복해야하는, 도전의 대상으로 생각을 해 왔었어요. 근데 성인이 되면서는 '꼭 내 장애를 극복해야하나?'에 대한 의문이 들더라고요. 자연스레 개인에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고요.


 

작게는 지역사회, 크게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회복지 아닐까요?

 

예로 장애인 복지관의 존재이유도 저와 같은 당사자들이 직업을 갖고 결혼하기 위한 제반 환경 구축의 구심점 역할을 지역 내 하기 위함이라 보거든요.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함께 계획을 설계하고 현장에서의 삶을 직접 부딪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요. 


나아가 전문가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을 수 있도록 [권익옹호/자기결정권/강점관점]등 끊임없이 역량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1. 자신의 메세지를 영상으로 표현하다.


안양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던 때였어요. 마침 <장애인식개선 UCC>공모가 있길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랩(뮤직비디오)형식으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수상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내 목소리가 전문가들이 말하는 열마디 말 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한편으로 '나와 같은 장애인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욕구도 생겼었고요. 권익옹호를 위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역할, 그러한 개념을 잡기 시작한 때가 아마 이 때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그 전에는 사회복지에 크게 관심 없었습니다. 개인주의가 좀 심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만든 제 UCC가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자료로 쓰이거나 지하철 광고로도 활용되면서 다른 이웃들의 목소리까지 대변할 수 있다는 저만의 강점이자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고요.




#2. Impossible is Nothing, 인간 최충일


선천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유전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이야기 안 할 수 없겠네요.뼈가 쉽게 부러지는 게 특징이라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만 생활을 자주 했었어요. 병원도 자주 들락날락 거렸었고요.


다행히도 초등학교때는 당시 재택교육제도라는 게 있어 가정방문 선생님 일주일에 2회 오셨어요. 중·고등학교때부터는 가정에서 벗어나 특수학교에서 6년 간 있었고요. 그때부터 제 시야가 넓어어졌던 듯해요. 다른 장애인들을 처음 봄과 동시에 세상에 나오게 된 첫 걸음마인 셈이죠. 

<내 힘으로 살아가는 자활>이라는 좌우명이 교실에 걸려있었어요. 그때는 멋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요즘 우리가 추구하는 장애인복지하고는 맞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 사회는 혼자서 살아가기에 어려움이 있을뿐더러 장애는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거든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비장애 대학생들과 학교 다니면서 일종의 통합생활을 했었어요. 그그때의 느낌요? 뭐랄까..마치 유치원 생활만 하다 갑자기 대학생활을 하는 느낌?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제 주변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 들어간 동아리가 바로 힙합동아리였어요. 떠올려보면 그 동아리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해주었던 통로로 작용한 듯 싶네요. 원래는 댄스 동아리였으나 제가 들어간 후 랩파트가 생기고 후배들과 같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유롭게 제 자신을 펼칠 수 있었던 기억으로 지금도 남아있답니다.


#3.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 한국골형성부전증 모임



희귀질환인 것도 그렇고 과연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궁금했었습니다.우연히 저와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한국골형성부전증모임'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http://cafe.daum.net/thsthdud)


그당시 단체의 회장이 저랑 시설에 함께 있었던 선배였고요. 신기하더라고요. 자연스레 모임에 참여하면서 저보다 어린 아동들을 비롯하여 청년기, 성인기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속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생긴 것도 비슷하고 '이들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구나'라는 동질성을 점점 느끼게 되었어요. 이들과 함께할 때 얻게되는 힘도 그렇고 스스로 배우는 것도 많이 있답니다. 가령 모임에서 주최하는 여러 캠프 및 행사들을 비롯하여 장학금 및 보장구 지원 등 저희들의 활동이 각종 매체에 알려지면서 많은 후원 및 관심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무서워지는 건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 해요


예전보다 복지가 많이 윤택해졌다고 하나 이를 막론하고 당사자들의 복지에 대한 욕구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입니다.


보여지는 숫자를 자주 비교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겉모습이나 물질적 삶에 대해 끊임없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요. 삶의 보편적 부분은 다 똑같기에 제 모든 것을 서슴없이 보여주며 강점을 찾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현재의 생활을 누리는 것, 무조건 욕구를 들어주기보다 삶을 더 들여다보고 공감해주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실천의 과정, 예비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이 인터뷰를 보시는 독자 여러분이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애인 아빠가 아닌 지성이 아빠로서 저를 기억해주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는 우리 이웃들의 '사회복지'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듣고자 진행하는 개인 공익 프로젝트입니다. 인터뷰에 참여하실 경우 본인 명의로 천 원이 적립되어 연말, 공익 및 사회복지기관을 선정하여 전액 기부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