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스토리텔러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Re:Work Season 20(191~200회)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리워크 - 18화 / 박은희(198)]

SocialWelfare StoryTeller 조형준 2023. 9. 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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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씨가 만연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는 뜨거운 햇살로 날씨가 덥네요.

 

그럼에도 하늘은 청명한 것이 가을이 오긴 왔나 봅니다.

 
9월의 두번째 콘텐츠

   <서울시 공유복지플랫폼> Wish 150번째 현장 스케치,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 철학을 공부한 사회복지사]

 

안녕하세요. 사당어르신종합복지관 부장 박은희 사회복지사입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종합사회복지관 장애아동 방과 후 교실의 보조교사를 시작으로 사회복지사로서 첫 발을 내딘 곳은 종합사회복지관이였습니다. 이 때부터 주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했고 부장직을 거쳐 사회복지법인 사무국장, 아동생활시설 시설장, 현재는 노인복지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첫 대학 입학은 사회복지학과가 아닌 철학과였습니다.

 

철학과 재학 중 97년도 말에 IMF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아버지 사업 또한 기울어지게 되면서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뇌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딸로서 학교와 병원을 매일 오가며 어머니를 케어 해야 했고, 이로 인해 “돌봄”, “의료”, “복지”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를 알게 되었고, 98년 2학기 개강 직전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하였습니다. 편입 전까지만 해도 제게 사회복지 분야는 생각 해 보지 못한 영역이었습니다만, 사회복지학과로의 편입은 제 인생의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삶의 방향과 인생의 길을 찾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직업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가치”, “존엄”, “의미”라는 요소가 사회복지분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친근했고,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철학이나 사회복지학문이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나타나는 ‘현상’의 문제를 다루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부, 석사, 현재 박사과정까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부족함을 채우고자 학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 해당부분은 본 프로젝트의 핵심이기에 최대한 편집을 절제하고 원본에 충실함을 알려드립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학과로 편입 후, 취업하기 전까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장애인복지관 한 곳에서만 사회복지실습과 모든 프로그램의 보조교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깨달은 건,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라는 것과 '장애’는 생활함에 있어서의 불편함일 뿐이지, 그 불편함이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비례할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맑고 순수하지만, ‘장애’라는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아이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인식시킬 때까지 얼마나 애달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 복지에 대한 실천적 지식이 많지 않아서 상대에 대해 무관심한 아이들을 관심 있게 만드는 것에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요.

 

프로그램 진행 내내 아이들과 지속해서 눈 맞춤을 시도하며 아이의 이름을 되뇌어 부르고, 제 이름도 같이 되뇌어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저의 얼굴과 제 이름을 알리는 거였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근함을 보이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들에게 차차 적응되어 갈 때 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도 귀한 아이들인데 왜 저런 장애를 안고 태어나야 했을까...?'

'무엇이 저 아이들에게 장애를 주고 불편함을 감당하게 하는 걸까...?'

 

‘장애’의 발생 원인과 구체적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함께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이를 시작으로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생겨 장애인복지 사업을 처음 실시하는 종합사회복지관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공간만 덩그러니 있던 곳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채로 꾸며가며, 하나하나 제 손을 거쳐 센터다운 모습으로 변모시켰고, 그렇게 센터에서 5년 동안 장애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몸이 아파 결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독 저를 힘들게 했던 자폐성향이 강했던 한 남자 아이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박은희 선생님 올 거야, 박은희 선생님 올 거야”

 

라고 반복하며 저를 찾았다는 동료의 말에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동적이였는지 모릅니다. 너무 기뻐서 다음날 출근하여 그 아이를 안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센터에서 함께했던 아이들의 사진을 담은 사진첩을 지금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저에게는 감동과 기쁨, 눈물을 안겨 준 아이들이였습니다.

 

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아이가 드디어 ‘나’라는 사람을 알아보고, ‘나’를 찾았던 것이죠.

 

마침내 저에게 안기며 미소를 지어보일 때의 그 감동과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려 노력했던 저를 아이들이 인정해주던 그 때의, 그 가슴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저의 첫 이유이기도 하고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사람에게 상처도 받지만 또한 사람에게 위안 받는 직업이 아니겠습니까...?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결혼 후, 저는 아이가 오랫동안 생기지 않아 특수병원을 다니다보니 경력단절이 생겼습니다. 이를 빌미로 저를 괴롭혔던 기관장의 갑질에 견디다 못해 싸우다가 퇴사를 해야했고요.

 

아이를 낳고 보니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경력단절을 또 겪게 되면서 우울증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야 하지...?' 라는 좌절감을 만드는 주변 환경이 너무나 싫어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이런 저를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한 분은, 다름 아닌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특수병원에 다니라고 허락해 주신 아버지 같은 기관장님이셨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집 안에만 있으면 쓰나, 아깝게..."라며 "아이를 맡길 수 있으면, 어린이집이라도 맡기고 나와."라는 말씀을 해 주시며 제 자리까지 직접 알아봐주셨습니다. 이후, 그 감사함에 제 능력을 보이려 노력했고, 시간이 지나 저를 알아봐주시는 타 기관의 기관장님과 센터장님께서 스카웃 제의를 해 주셔서 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 생각지 못한 상황,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시련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그 시련과 좌절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갖게 하여 고통을 안겨주지만, 한편으로는 “내 인생”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 해 보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저와 같은 상황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계시는 사회복지사가 계시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 사람에게 치유 받으니, 우울이라는 감정의 깊이에 빠지지 마시고 주변을 돌아보시고 굳은 마음으로 일어서시라"고요.